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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해하던 요트가 태풍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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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충열 작성일2017-09-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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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하던 요트가 태풍을 만났다.

파도가 두어 시간 휘감아 버리자 기관실이 망가지고 무전기도 불통이 되었다.

요트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배안에 남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양식도 물도 줄어 가는데, 구조선은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부상을 당해 앓고 있던 한 사람이 죽었다. 남은 사람들은 줄어든 한명의 입에 대해 차라리 안도했다.

누가 빵 한조각, 물 한모금을 더 먹는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난객 가운데 임산부가 있었는데, 그 여인은 아기를 낳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의 눈이 번쩍였다. 사람들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우리가 죽더라도 저 아이만은 살리자","저 아이에게 육지의 꽃과 평화를 맛보게 하자."

한사람이 자기 혼자만 쓰기 위해 숨기고 있던 낚시바늘을 내놓았다. 또, 한 사람이 낚싯줄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미끼를 내 놓았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낚시질을 해서 산모를 먹였다.

또 한 사람이 임종을 맞았다. "부디 내 죽음이 저 아기를 위한 죽음이 되게 해 주시오."

죽는 사람은 미련 없이 눈을 감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슬픔에 차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옆 사람을 원수처럼 여겼던 사람들의 얼굴에

평화가 찾아왔다. 물 한 모금도 아이를 위해 양보하자 기쁨이 일었다. 남은 사람들은 조각난 판자로

노를 만들어 저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오직 아기를 뭍에 닿게 하기 위하여 저어 갔다.



-정채봉,[향기 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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